
우리 몸의 ‘거대한 화학 공장’이라 불리는 간은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꾸고, 몸속 독소를 해독하며, 면역 체계를 유지하는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수많은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역할과 달리, 간은 암이 발생하더라도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별다른 통증이나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는 ‘침묵의 장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간암은 조기 발견이 매우 어렵고, 여전히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중 하나로 꼽히며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간암은 폐암에 이어 국내 암 사망률 2위를 차지할 만큼 치명적이다. 5년 생존율 또한 전체 암 평균치인 70%대에 크게 못 미치는 39.4%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과거보다 치료 성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간암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얼마나 빨리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간암은 간세포 자체에서 발생하는 원발성 암이다.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건강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환자가 복부 팽만감이나 체중 감소, 황달, 복수와 같은 뚜렷한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는다면, 이는 이미 암이 상당 부분 진행되어 치료 선택지가 좁아진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간이 스스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상태를 살피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간암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기보다 만성적인 간 질환을 배경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B형이나 C형 바이러스성 간염, 알코올성 간 질환, 그리고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이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다. 특히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대사증후군의 영향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 새로운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 요소를 가진 환자라면 설령 아무런 증상이 없더라도 6개월 간격으로 초음파 검사와 혈액 내 종양표지자 검사를 받는 등 철저한 추적 관찰이 필수적이다.
간암의 진단은 보통 1차 선별 검사인 복부 초음파에서 시작되며, 이상이 발견될 경우 CT나 MRI와 같은 정밀 영상 검사를 통해 종양의 정확한 위치와 혈관 침범 여부를 파악한다. 치료법은 암의 진행 단계뿐만 아니라 환자의 전반적인 간 기능 상태를 고려하여 맞춤형으로 결정된다. 다행히 암을 조기에 발견했다면 간 절제술이나 고주파 열치료 같은 국소 치료를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며, 특히 종양이 초기 단계일 경우 간이식을 통해 암과 기저 간 질환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장기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양으로 가는 혈류를 차단하고 항암제를 직접 투여하는 간동맥화학색전술이나 방사선 치료, 그리고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면역항암제 요법 등을 통해 진행성 간암에서도 점차 좋은 치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간암은 치료 후에도 재발률이 상당히 높은 암인 만큼, 완치 판정 후에도 정기적인 검사와 함께 금주, 체중 관리 등 꾸준한 생활 습관 교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간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이 침묵하고 있을 때 우리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이다. 간 질환 위험군에 해당한다면 정기검진을 생활화하여 소중한 삶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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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