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임신을 의심하게 하는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지만, 실제로 이러한 증상을 경험하는 임산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임신 거부증협회 회장인 펠리스 나바로 박사는 "임산부 500명 당 1명의 비율로 임신거부증 증상을 갖고 있으며, 2500명 당 1명 꼴로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완전한 임신 거부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임신거부증의 증상 및 원인은?
임신거부증은 산모가 임신 자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심리적·정신적 증상으로,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임신거부증은 임신 7~8개월 사이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부분 거부형'과 출산 전까지 산모가 임신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완전 거부형'으로 분류된다.
임신거부증을 앓는 산모들은 배가 앞으로 불러오지 않는다. 태아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라도 하듯 자궁의 배 앞쪽이 아닌 위쪽으로 올라가거나 척추에 붙어 자란다. 이 때 산모는 일반적인 산모와 달리 입덧도 없고 태동도 느끼지 못한다. 또 생리가 멈추지 않고, 임신 테스트기 결과 한 줄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임신거부증은 산모의 심리에서 비롯된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 혹은 성폭행 트라우마가 있거나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 산모가 임신을 거부하는 심리적 상태가 원인이 된다.
-임신거부증을 앓는 산모에게는 '모성애'가 없을까?
전문가들은 임신거부증을 가진 산모는 출산을 하더라도 모성애를 갖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 보니, '내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생소했던 임신거부증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는 자신이 낳은 세 명의 아이를 살해했다. 임신거부증을 앓고 있는 이 여성은 "자신이 낳은 것은 아이가 아니며, 뱃속에서 나온 신체의 일부인 무언가를 죽였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임신거부증이 의심되는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부정하고, 방치·사망에 이르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전해지며, 임신거부증을 앓는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산모와 아이를 위협하는 임신거부증, 극복할 수 있을까?
산모와 아이의 교감은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일반적인 산모의 경우 아이의 건강한 정서를 위해 태교에 정성을 쏟는다. 하지만 태아의 존재를 모르는 임신거부증 엄마는 태아와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없다. 중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심리적 불안감, 우울증 등을 겪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은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때는 산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임신거부증, 우울증 등은 정신질환에 해당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담 및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애착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0개월 간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지내다가 어렵게 세상 빛을 본 태아, 환영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산모와 아이 모두가 행복하려면, 임신거부증 엄마의 마음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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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