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그늘 ‘우울증’, 노화 아닌 치료 필요한 ‘질병’

▲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되었다. 진료 현장에서는 우울증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나 ‘낫지 않는 병’으로 치부하던 편견이 사라지고,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변화를 뚜렷하게 체감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개선 속에서도 65세 이상 노년기의 정신 건강은 여전히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 증상이 상당히 심각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노년기 우울증이 조기에 발견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청·장년기에 발병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특성이 있어, 노년기에 처음 나타나는 증상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자녀의 독립과 사회적 관계의 축소로 인해 주변에서 환자의 변화를 제때 발견하기 어렵고, 신체 질환이나 인지 저하가 동반되면서 우울 증상이 교묘하게 가려지는 ‘마스킹’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식욕 저하나 기력 상실을 질병이 아닌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오해하는 식이다.

임상적으로 가장 흔하면서도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노년기 정신 질환은 단연 우울증이다. 2주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거나 평소 즐기던 활동에 흥미를 잃고, 식욕 변화나 불면, 피로감, 무가치감, 집중력 저하 등이 동반된다면 ‘주요우울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이전과 비교해 가사나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 전반에 눈에 띄는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가이다. 비록 진단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지속성 우울장애 등으로 분류되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노년기는 전 생애를 통틀어 우울증이 가장 흔한 연령대이다. 일반 노인 인구의 주요 우울장애 유병률은 1~4% 수준이지만,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자살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노년기 우울증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시급한 공중보건 과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연령대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주관적인 우울감보다는 두통이나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같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 뒤늦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곤 한다. 또한 은퇴나 사별 등 인생 주기에 따른 반복적인 상실감이 우울증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치매와 증상이 중첩되는 점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인지 저하와 감정 표현 감소가 나타나는 치매 환자 중 상당수가 우울 증상을 동반하며, 거꾸로 우울증이 심해 치매처럼 보이는 ‘가성 치매’의 경우 적절한 치료만으로 인지 기능이 호전되는 가역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년기 우울증은 단순히 늙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생리적 현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삶의 질이 중요해진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동시에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지키는 일이다. 우울감을 느끼는 본인은 물론 주변의 친지들이 이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치료에 나설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전체의 따뜻한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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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윤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