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병(fabry disease)’은 당지질의 선천성대사이상으로 발생하는 희귀 성염색체 유전질환이다. 발병하면 피부, 눈, 뇌, 말초신경, 신장, 심장 등 다양한 장기에 문제를 일으킨다.
파브리병원 1898년 독일의 존 파브리(Johann Fabry)와 영국의 윌리암스 앤더슨(Williams Anderson)에 의해 처음 보고, ‘파브리 앤더슨병’으로도 불린다. 유병률은 인구 11만 7000명당 1명 꼴로 알려지지만, 이마저도 진단이 잘되지 않아 정확하지 않다.
파브리병이 국내에 알려진 건 오래지 않다. 1989년 처음 보고된 이래 현재 누적 환자는 250여 명에 불과하다(국내 파브리병 환우회 통계). 그나마 2019년 여름 방송된 SBS 드라마 ‘의사 요한’에 잠깐 등장하며 일반에 알려졌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신장내과 윤혜은 교수는 “파브리병은 초기 증상이 다양하고 남녀에 따라 증상의 정도도 달라 환자 스스로 증상을 인지하기 어렵고, 전형적인 증상이 아니라면 의료진도 처음부터 진단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다만 일단 진단되면 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서 합병증을 관리하면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은 장기 합병증 발생을 지연시켜 건강한 생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은 당지질대사를 담당하는 세포 내 소기관 리소좀(lysosome) 효소(알파 갈락토시다제 A)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사되지 않은 GL-3(또는 Gb-3)라는 물질이 우리 세포에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나타난다.
증상은 어릴 때부터 설명이 잘되지 않는 신경통이나 땀분비 이상, 안과와 피부 질환이 동반되고, 성인이 되면서 원인불명의 신장과 심장 기능 악화가 나타나 젊은 나이에도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 초기 손발이 타는 듯한 통증이나 땀이 나지 않는 무한증, 피부 발진, 만성 통증, 단백뇨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전신에 걸쳐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진행성 질환으로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 손상으로 이어져 결국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심장혈관내과 변재호 교수는 “파브리병은 환자마다 증상이 매우 다르고 단독증상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증상을 인지하고 병원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 유전질환으로 일단 진단되면 가족 중 추가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파브리병 환자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파브리병이 성염색체, 즉 X염색체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여서 증상이 조기 발생하고 좀 더 심한 반면, 여성은 증상이 발생하더라도 무증상부터 심한 증상까지 다양한 임상 증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여성이 파브리병에 대해 안전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증상이 의심되면 남성의 경우 효소 활성도 검사를 하고 여기서 의심되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여성은 효소 활성도 검사에서 정상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의심이 되면 바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이 밖에 대사되지 않는 물질을 측정하는 검사법이나 침범한 장기의 조직을 검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검사를 종합해 최종 진단한다.
파브리병으로 진단되면 증상의 경중과 국가에서 지정한 보험 기준에 따라 효소대체요법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대사되지 않은 GL-3를 배출시켜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는 아니다. 적응증이 있다.
파브리병 진단 후 성인이 되면 뇌졸중 또는 심장, 신장 기능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식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파브리병은 유전질환임에도 진행 억제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윤혜은 교수는 “희귀 유전성 질환이라고 하면 덜컥 겁부터 먹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 쉽지만, 파브리병은 치료제가 있고 병을 모르고 있던 가족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만큼 적극적인 동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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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