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말: 김영훈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하지만 영유아기 때 아빠가 없었던 아이들은 수리능력이 떨어지고 성취동기도 낮았는데, 이처럼 아빠의 존재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이며 ‘아버지’에 대해 연구하고 저술해 온 로스 D. 파크(Ross D. Parke)는 아이의 성장 발달에 미치는 이러한 아빠의 고유한 영향력을 ‘아빠효과(Father Effect)’란 말로 개념화시켰다.
또한 아빠가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이러한 행동이 아이의 성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들도 많은데, 이 결과에 의하면 아빠는 자녀의 성장 발달에 매우 중요하면서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연령과 지능, 가정환경은 비슷하지만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에서 차이가 있는 네 집안의 아이들에게 학업 성취도를 측정하는 연구가 있었다.
이 연구에서 아이들의 점수 차이를 확인해보니 스탠포드성취도 검사와 학점 모두에서 아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다른 집단의 아이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고, 나머지 세 집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아빠들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예 집을 떠나버린 아빠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빠가 자녀의 학업성취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은 집에서 가능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아빠의 부재는 물론 아빠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면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의 연구와 일치하는데, 특히 남아들의 학업성취도는 아빠와 함께 하는 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남아들의 학업 성취도가 상당 부분 동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으로,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아들은 인내심이 성취동기의 모델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아빠는 아들에게 바깥세상에 남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좋은 모델이 된다. 아이가 아빠를 관찰하고 모방할 기회가 많아질 수록 전반적인 유능감이 발달하는 것이다.
아빠도 아기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빠도 소리나 입 운동과 같은 아기의 신호에 대해 엄마와 마찬가지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 아빠는 아기에게 말걸기를 더 많이 하고 더 만지고 더 가까이에서 아기들을 쳐다본다.
이 경우 엄마는 주로 아기를 만지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아빠는 주로 말을 거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아빠와 아기도, 엄마와 아기의 관계처럼 꾸준히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빠가 아기의 신호에 적절히 반응하면, 반대로 아기는 아빠가 자기를 대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아기 스스로 개발한 의사전달 기술을 이용한다. 이 의사소통은 일찍부터 아기에게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
8개월 아기와 부모의 놀이를 관찰한 결과, 아빠는 엄마보다 아기를 던져 받아 안거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신체놀이를 많이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신체놀이는 분명 엄마와 이루어지는 언어에 의한 정적인 상호작용을 보완해 줄 수 있다.
다시 남아의 예로 들면, 가정에서 결정권이 있고 지배적이며 아이의 교육에도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아빠의 역할 모델은 남아가 남성적인 전형을 갖는데 의미있는 영향을 미친다.
또한 여아의 여성다움은 아빠의 남성다움이나 아빠가 딸의 모델로서 엄마를 인정하는가의 여부, 혹은 여성적인 활동에 대한 아빠의 따뜻한 격려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편 로스 D. 파크에 의하면 이러한 아빠의 영향은 단지 영유아기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있어서도 딸들의 남자관계는 엄마와의 관계에 의한 것보다 아빠와의 관계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데, 후에 여자들이 이성과의 관계에서 문제점을 계속 드러내는 이유를 살펴보면 어렸을 때 아빠가 무관심했거나, 양육에도 관여하지 않고 딸들을 적대적으로 취급했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4세 아이의 인지 발달에서도 친절하고 자주 칭찬하고 도움을 주는 아빠를 둔 남아는 그렇지 않은 아빠를 둔 남아보다 지능과 어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빠역할을 교육받는 아빠
기저귀 갈기나 분유 먹이기 같은 아기 돌보기나 놀이, 훈육 등 아빠 역할과 관련해 수업을 받은 아빠는 그렇지 않은 아빠보다 아이로부터 상호작용이나 반응을 훨씬 많이 이끌어 냈다.
이런 즉, 아빠 역할이란 가르치면 배울 수 있는 것인만큼 유능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또한 아이 양육에 있어 아빠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아빠에게는 아빠만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따로 있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양쪽의 역할을 모두 해낼 수는 없다.
물론 아빠의 역할 가운데는 엄마의 역할과 비슷해서 서로 바꾸어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아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아빠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을 접하게 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교육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아빠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다.
한때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면서 아빠는 가정에서 해야 할 중요한 교육을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저명한 교육학 박사 시치타 마코토는 아이교육을 포기하면 아빠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진다고 했다.
과거 목격했던 교육프로그램에서 한 엄마가 너무 ‘불도저’식으로 아이를 몰아붙이자 아빠는 아이의 교육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의 교육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되니까 아이와 스킨십도 줄어들었다.
가령 아이를 목욕시킬 때 아이는 탕에다 두고 아빠는 탕 밖에서 샤워기로 물을 뿌려주는 식으로 목욕을 시키는 것이었다.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법이다.
6세 이전 아이의 교육은 본래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격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존경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아빠를 존경의 대상으로 보는 만큼, 아이도 아빠로부터 존중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보다도 아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빠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훈 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가톨릭대 의대 졸업 후 동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베일러대학교에서 소아신경학을 연수했다. 50여편의 SCI 논문을 비롯한 1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의학학술지에 발표했으며 SBS <영재발굴단>, EBS <60분 부모>, 스토리온 <영재의 비법> 등에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가 똑똑한 집, 아빠부터 다르다>, <머리가 좋아지는 창의력 오감육아>, <아빠의 선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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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