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깨진 그릇을 고쳐 쓸 수 있을까?

도움말: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부부치료 할 때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깨진 그릇을 정말 다시 고쳐서 쓸 수 있냐”는 말이다. 특히 외도를 겪은 부부에게서 이 질문은 자주 받는다.


“제 배우자가 외도를 했고, 잘못했으니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하는데 저는 너무 힘들어요. 배우자에게 가졌던 신뢰가 이제 사라졌어요. 더 이상 배우자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인데, 이 사람과의 관계가 정말 고쳐질까요?”

외도와 같은 큰 상황이 일어난 후에도 부부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순하게 "네"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부부의 관계가 크게 손상된 경우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부부의 관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깨진 그릇을 다시 고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외도를 겪은 부부들 중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함에도 실패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는데, 이는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애쓰는데 잘 안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목표 설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잡으면 결국 도달할 수 없다.

부부의 관계는 믿음과 신뢰가 중요한 기반이다. 따라서 외도와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난 경우, 이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릇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믿음과 신뢰를 쌓아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떠올려 보면 부부가 과거 처음 만나고 연애를 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을 공유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신뢰라는 것이 쌓인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해서 산산이 부서진 신뢰를 이전처럼 단번에 만들어 나가고 회복시킬 마법과 같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계, 믿음, 신뢰를 하나하나 새롭게 쌓아 나가는 것이다.


‘신뢰를 쌓아 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하고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든 부부마다 다르겠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줘라’ 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노력을 해 주고,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는 것, 그러려고 노력하는 시간이야 말로 신뢰를 쌓아 나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이 또한 모든 부부가 다르겠지만, 몇 달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라고 여겨진다. 서로가 신뢰하고 믿음을 회복하며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년 단위로 생각해야 한다. 신뢰는 평생 쌓아 나가는 것이다. 외도와 같이 큰 상처가 회복되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어쩌면 당연히 필요하다.

부부치료를 통해 많은 부부가 외도의 상처를 극복하고 관계를 회복시켜 나갔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부부관계가 크게 깨어졌다면 이전과 같이 되돌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관계는 더 나은 모습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도록 애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꽤나 오래 걸리고 힘들겠지만 소중한 관계를 지키고 더 단단히 만들어 나가는,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저작권자 ⓒ 헬스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현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