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원장의 부부상담③ 황혼이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도움말: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혼인, 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이혼 건수 중 30년 이상 혼인을 지속한 부부의 비율이 17.6%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인 2011년과 비교했을 때 무려 10.6%가 늘어난 수치다.


또 서울시가 올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의 이혼 부부 중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지속한 경우(27.3%)가 결혼 4년 이내(25.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부부가 비교적 나이가 들어 이혼하는 유형을 '황혼이혼'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50대 이후의 인생을 ‘인생의 황혼기’라고 말한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독립했을 무렵 부부의 나이는 50대~60대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이혼을 황혼이혼이라 칭하는 것이다.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한 노년기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평균 수명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자녀를 독립시킨 50대 부부의 경우 지내온 날보다 앞으로의 결혼생활이 더 길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게다가 50대~60대의 경우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어 직업 활동을 포함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대인관계 및 여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자녀 독립 후에도 한참이나 남은 결혼 생활을 갈등을 참아가며 살고 싶지 않기에 이혼을 선택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포함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고유의 성 역할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고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모습도 바뀌는 중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 남편은 일하고 아내가 육아한다고 이야기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지금의 50대 부부들은 전통적인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강요받는 시기에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역할의 평등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어느 세대보다 넓은 가치관을 폭넓게 경험하는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치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부에게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황혼이혼으로 이어지기 쉽다.

황혼이혼을 결정하는 부부에게서 공통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는 이혼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최근에 생긴 갈등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 혹은 두 사람 모두 자녀들을 독립시킬 때까지 참고 견디다가, 때가 되면 참았던 이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오랫동안 그저 참고 견디며 소원하게 지내는 긴 시기를 보내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젊은 부부들은 열심히 싸우고 대화도 많이 한다. 비록 갈등이 다 봉합되지는 않더라도 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나이를 먹은 부부들은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십 년 혹은 그 이상을 침묵하며 견디며 지낸다.

부부 갈등에 있어 해결의 시작은 언제나 대화에서 출발한다. 만약 가부장적인 남편이라면 오래된 권위를 조금 내려놓고 반평생을 옆에서 반려자로 지낸 아내를 위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할 기회를 주고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반면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아내였다면 무엇이 섭섭하고 앞으로 당신이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는지 잘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꼭 필요하다. 마음속에 응어리를 쌓아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까지 설명해야 남편이 알아줄까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는 가까운 사이라도 직접 듣지 않았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3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부부는 기쁜 순간들과 섭섭한 일들을 참 많이도 겪으면서 지내왔을 것으로 안다. 많은 부부를 만나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익숙하기에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이다. 부부의 관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해묵은 갈등으로 지치고 힘들지라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대화와 경청, 이해하는 노력을 충분히 해봤으면 한다.

<저작권자 ⓒ 헬스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염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