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합병증, 증상이 없는데도 왜 위험할까요?

병동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혈압 때문에 입원한 분들이 꼭 심하게 아팠던 것은 아니라는 걸 자주 봅니다. 어떤 분은 두통이 전부였고, 어떤 분은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다는 말을 몇 년째 들었지만 불편한 게 없어서 약을 미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고혈압 합병증은 조용히 진행되다가 뇌, 심장, 콩팥, 눈에 문제가 생긴 뒤에야 크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진단을 하지 않습니다. 진단과 치료 결정은 의사가 합니다. 다만 18년 동안 내과 병동과 검진센터에서 봐 온 경험으로, 어느 선부터 가볍게 넘기면 안 되는지 차분히 짚어드리고 싶습니다.
혈압이 높다는 건 혈관이 계속 압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혈압은 혈액이 혈관 벽을 미는 힘입니다. 수축기 혈압은 위 숫자, 이완기 혈압은 아래 숫자입니다. 보통 120/80mmHg 미만을 정상 범위로 보고, 140/90mmHg 이상이 반복되면 고혈압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는 한 번 잰 수치만 보고 바로 판단하지 않고, 반복 측정과 생활습관, 기존 질환, 복용 약을 함께 봅니다.
문제는 혈압이 높아도 몸이 바로 신호를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혈관 벽은 매일 조금씩 손상되고, 심장은 높은 압력을 이기려고 더 세게 일합니다. 처음에는 버팁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느껴집니다. 근데 몇 년이 지나면 혈관이 딱딱해지고 좁아지면서 장기 쪽 혈류가 흔들립니다. 이때부터 합병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혈압 합병증은 어디에 생길까요?
뇌: 뇌졸중과 혈관성 치매
혈압이 높으면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힐 위험이 올라갑니다. 갑자기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말이 어눌해지고, 얼굴 한쪽이 처지거나, 시야가 이상해지면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됩니다. 병동에서 보면 본인은 잠깐 저린 거라고 넘겼는데 가족이 말투 변화를 알아채고 데려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증상은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남는 후유증을 줄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심장: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고혈압은 심장에 계속 무거운 일을 시킵니다. 오래되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고, 혈관이 좁아져 가슴 통증이나 숨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 전보다 숨이 차거나,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반복되거나, 식은땀과 메스꺼움이 같이 오면 단순 피로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당뇨가 있는 분이나 고령자는 전형적인 흉통 없이 답답함, 소화불량 같은 느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콩팥: 만성콩팥병
콩팥은 작은 혈관이 아주 많은 장기입니다. 혈압이 높으면 콩팥의 여과 기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검진 결과에서 크레아티닌, 사구체여과율, 단백뇨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소변에 거품이 많아졌거나, 발목이 붓거나, 밤에 소변을 자주 보는 변화가 생기면 혈압과 콩팥 기능을 같이 확인해야 합니다.
눈: 망막 손상
눈의 혈관도 고혈압 영향을 받습니다. 시야가 흐려지거나, 번쩍임이 생기거나, 갑자기 한쪽 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으면 안과와 내과 평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검진센터에서 혈압이 높고 안저 검사에서 망막 변화가 보인 분들은 실제로 혈압 조절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수치는 미루지 않는 기준으로 보셔야 합니다
집에서 혈압을 쟀을 때 180/120mmHg 이상이면 우선 1~5분 정도 안정한 뒤 다시 재는 것이 좋습니다. 커피, 흡연, 운동 직후, 대화하면서 잰 혈압은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잰 수치가 180/120mmHg 이상이라면 의료진에게 바로 연락해야 합니다.
그 수치와 함께 가슴 통증, 숨참,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 말이 어눌함, 한쪽 마비나 저림, 시야 변화, 등이나 가슴 또는 복부의 심한 통증이 있으면 응급 상황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심장협회와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 안내에서도 180/120mmHg 이상에 이런 증상이 동반되면 즉시 응급 진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증상은 지체하지 않고 응급실로 가야 하는 신호입니다.
- 혈압이 180/120mmHg 이상으로 반복 측정된다
- 가슴 통증이나 숨참이 새로 생겼다
- 말이 어눌하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거나 심한 두통이 온다
- 혈압약을 먹는데도 160/100mmHg 이상이 자주 나온다
- 당뇨, 콩팥병, 심장질환이 있는데 혈압이 계속 높다
검진에서 혈압이 높게 나왔다면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검진장에서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긴장해서 오르는 분도 있고, 실제 생활 혈압이 높은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아침과 저녁에 며칠간 재어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침은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온 뒤, 식사와 커피 전, 약 복용 전이 좋습니다. 저녁은 잠들기 전 안정된 상태에서 재면 비교가 쉽습니다.
혈압계 커프는 팔둘레에 맞아야 하고, 팔은 심장 높이에 둡니다. 다리를 꼬거나 말하면서 재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한 번 높게 나왔다고 당황하기보다 같은 조건에서 반복해서 봐야 합니다. 다만 반복 수치가 높으면 기록을 들고 진료실에 가는 게 가장 빠릅니다. 의사는 그 기록을 보고 약 조절,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안저 검사 같은 평가가 필요한지 판단합니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가 더 중요합니다
솔직히 혈압약을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해됩니다. 그런데 혈압약은 숫자를 예쁘게 만들려고 먹는 약이 아니라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콩팥 손상 같은 고혈압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먹는 약입니다. 중간에 괜찮아졌다고 끊으면 혈압이 다시 올라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지러움, 다리 부종, 기침, 전해질 이상 같은 부작용이 의심되면 혼자 중단하기보다 처방한 병원에 말해야 합니다. 약 종류나 용량을 바꾸면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감기약, 소염진통제, 일부 한약이나 보충제는 혈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복용 중인 약을 진료 때 같이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고혈압은 겁을 먹어야 하는 병이라기보다, 조용할 때 관리해야 손해를 줄이는 병에 가깝습니다. 몸이 괜찮다는 느낌만 믿기보다 수치와 증상을 같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특히 180/120mmHg 이상, 신경학적 증상, 흉통, 숨참, 시야 변화는 기다려서 확인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