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호수에서 안온한 산책을, '대구 수성못 둘레길'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기억하는지. 소년에게 그네가 되고 가지를 주고 밑동까지 내주던 나무 말이다. 대구 사람에게 수성못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수성못 물을 먹고 자란 벼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먹는 형편이 나아지자 사람들은 수성못에서 쉬어갔다. 아이들은 수성들에서 메뚜기를 잡고 청년들은 나룻배를 탔다. 2020년, 사람들은 여전히 수성못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어둑한 마음을 햇볕에 쬐기 위해. 그런데도 수성못을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못이 왜 만들어졌는지,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말이다. 


▲ 억새와 가우라가 핀 수성못 둘레길


묘하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샘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면 수심을 알 수 없는 너른 바다 같다. 수성못은 대구 12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이자 대구 시민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장소다. 만들어진 지 100년을 바라보는 큰 못은 대구를 아늑히 그러안는다.

수성못은 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호수다. 그만큼 각자 이곳에 얽힌 추억도 많다. 1970~80년대에 대구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십중팔구 수성못이었다. 아이들은 수성들(현 들안길먹거리타운 일대)을 쏘다니며 메뚜기를 잡았다.


겨울철이 되고 물이 꽁꽁 얼면 못은 썰매장, 스케이트장이 됐고, 1990년대에는 소박한 유원지 같은 분위기였다. 1993년에 놀이공원 아르떼 수성랜드가 못 옆에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가 수성못에서 나룻배를 타는 거였다. 못에 붕어와 잉어가 많아 동쪽 둑에 낚시꾼도 많았었다.


▲ 1927년에 농업용 저수지로 만든 수성못


▲ 단풍 든 나무와 오리배가 어우러진 수성못

2020년의 수성못도 여전하다. 2km 둘레의 수성못에 난 산책로, 수성못 둘레길은 걷기 운동을 하고 데이트를 나온 이들로 활기를 띤다. 길은 시작점도, 정해진 동선도 딱히 없다. 40여 분만 걸으면 한 바퀴를 다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수성못 관광안내소를 기준 삼아 시계 방향으로 걸으면 ‘수변데크로드’에서 수성못의 수변 식물을 먼저 관찰할 수 있고, 반시계 방향으로 걸으면 ‘마사토 산책로’에서 걷는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편의상 수성못 관광안내소를 기점으로 삼았고, 안내소 옆 왕버들에 이끌려 시계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 수성못 둘레길 둥지섬 앞을 산책하는 사람들

6·25전쟁 후 끼니를 챙기는 것이 잘사는 것과 동의어이던 시절, 저수지의 물은 벼를 자라게 하고 사람들의 곯은 배를 달래주었다. 그런가 하면 미즈사키 린타로는 ‘내가 죽으면 수성못이 잘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에게는 수성못이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리움의 존재였을 것이다. 현재 그는 수성못 남쪽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잠들어 있다.

수성못의 풍경은 도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다. 200살쯤 된 왕버들이 가지를 뻗어 초록 그늘을 만들고,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 위를 오리가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나무 데크 앞에 어른 팔만 한 잉어가 모여 있는가 하면 둥지섬으로 왜가리가 날아든다.


▲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 자라는 왕버들


▲ 수성못을 유영하는 흰뺨검둥오리

수성못이 지금의 모습이 된 건 약 4년간 생태복원사업을 한 결과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친수생태벨트를 조성하고 수변 식물을 심고 산책로를 만들면서 친환경 생태공원이 됐다.

친수생태벨트는 신천~수성못~범어천~신천을 잇는 수로관 물길을 말한다. 이 친수벨트를 통해 신천 물이 하루 1만 톤씩 수성못에 유입되고, 또 하루 1만 톤씩 범어천으로 빠져나간다. 범어천으로 흘려보낸 물은 나중에 다시 신천으로 합류하고 이전에 하루 2000톤이던 물 유입량이 다섯 배나 늘면서 신천 물이 수성못에 머무르는 시간도 1년에서 70일로 확 줄었다. 물이 고이지 않고 계속 순환되니까 수질도 좋아졌다.

둑에는 콘크리트를 없애고 식물을 심어놨다. 수중에는 갈대와 왕대, 연꽃이 자라고 길가에는 갈대, 억새, 맥문동, 코스모스가 피어났다. 동쪽 물가에는 180m 길이의 수변데크로드를 놓아 둥지섬과 수변 식물이 잘 보이도록 했다. 그 무렵부터 왜가리도 많아졌다. 수성못의 환경이 청정하다는 걸 입증하는 셈이다.


▲ 다양한 수변 식물을 볼 수 있는 둘레길 동쪽 구간

수변데크로드는 걷는 맛이 나는 구간이다. 바람에 사각대는 갈대, 데크로드에 통통 울리는 발소리가 가을의 선율을 만든다.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수성못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해설사 선생님과 남쪽으로 향한다.

2km밖에 안 되는 둘레길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수성못의 동서남북이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서다. 동쪽에는 둥지섬과 수변데크로드, 남쪽에는 오리배 선착장과 왕벚나무 산책로, 서쪽에는 마사토 산책로, 북쪽에는 수상무대가 있다. 못이 동쪽의 동막산, 남쪽의 법이산, 북쪽의 팔공산에 폭 안겨 있고, 호수에 오리배가 떠다니니 도시에서 멀리 떠나온 기분도 든다.


▲ 1980년대 복고풍 느낌의 오리배 선착장

햇볕에 일광욕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호반의 끝자락이다. 호반에서 마사토 산책로로 넘어가는 모퉁이, 나무데크 아래가 신천 물이 흘러들어오는 유입부란다. 마사토 산책로는 이전보다 동적인 분위기다. 운동복을 입고 ‘파워워킹’을 하는 사람들이 곁을 지나간다.


▲ 마사토 산책로의 벤치에서

▲ 수성못 관광안내소 옆 이상화 시인의 동상과 시비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내내 유순하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을지언정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정경이고, 그래서 구석구석에 눈길이 닿는다. 무시로 감탄하며 한 바퀴 걷고 나니 해가 뉘엿하다. 하늘에 불그스레한 물이 들더니 지상의 불빛이 하나둘 수성못에 내려앉는다.


여행 정보
-이용시간 : 24시간 (연중무휴)
-이용료 : 무료
-주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606-1 (수성못 관광안내소)


[※본 칼럼의 내용은 한국관광공사 함께 떠나는 힐링 테마여행에서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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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회 기자 다른기사보기